일만지획


Project 2 / 2019. 9. 1 – 12. 31 / 스튜디오126

평 론 / 문 경 주



여기에서, 눈을 감고 생각하다. 


2017년 작품 Ping #1과 #2의 가제를 [Meditation]으로 정했던 작가 조기섭은 2014년 작품 [7시, 표선]을 시작으로 명상의 시간을 통해 발견한 자신의 내면세계를 완성된 작품으로 관객에게 선보여왔다. 


정육면체의 닫힌 방에서 종이와 작가만이 대면하는 방식의 작업을. 고수했던 조기섭은 2019년 라이브 페인팅 프로젝트 를 통해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객의 스마트폰에 전송하는 도전을 한다. 자신은 평면 작업‘만’을 한다고 소개하는 작가가 작품의 인생에 개입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내가 프로젝트 큐레이터로 참여하는 것을 결정했던 큰 이유 역시도 여기에 있다. 관객이 감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넘어 작품의 일부가 되기도 하는 현대미술계에서 클래식 프레임을 계승하는 한국화 작가가 동시대성을 입기로 선언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식에 온전히 집중하여 현상 너머의 세계를 발견하는 것을 광장에서 한다고 생각해보자. 명상을 통해 자아를 정돈하고 깨끗한 마음을 마주하는 경험은 살아있는 인간 모두에게 필요하다. 하지만 타인과 물상으로 가득한 장소에서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오랜 시간 수련한 인도의 어느 승려나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픈 스튜디오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모자라 우주보다 넓은 온라인 세계에 자신과 작업을 전송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작품의 표면 만으로 예술의 의미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의 시작부터 완성 후 스튜디오 설치까지의 시간을 관통하는 의미를 관객에게 전하고 싶다는 작가의 의지에서 시작했다. 


2019 슬로우 라이브 페인팅 프로젝트의 두 번째에 해당하는 <一萬之劃>은 일만이라는 수와 획이라는 붓의 방식을 정해두고 시작했다는 점에서 작가의 전작들과 큰 차이를 보여준다. 물론 조기섭이 어떤 시간과 공간에 실재하는 것을 그리는 작가는 아니다. 나무를 양팔로 둥글게 안고 눈을 감았을 때 비로소 흐르던 세계를 잊지 못하는 작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눈을 감은 관객의 세계에도 있을 것 같은 자연물과 인공물을 그려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각인의 역사가 쌓여서 만들어진 세계가 아니라 작가 스스로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는새로운시간을 직면하고 종이에 그리기로 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을 감아야 명상이 가능한 것은 눈 앞에 펼쳐진 수많은 형상과 나를 분리하는 가장 간편한 선택이 눈을 감고 주변을 캄캄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의 공간에서 나를 떼어내도 내면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은 어렵다. 도대체 왜 그 사람이 미웠는지를 묻거나 이것이 너의 온전한 선택인지를 묻는 일은 선명하게 괴롭고 고독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형체가 있는 명상은 없을까? 깨끗한 마음을 가지려는 한 사람의 노력을 우리가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내면을 마주하는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조기섭은 <一萬之劃>을 그리는 동안 끊임없이 번뇌했다. 찰나의 한 획이 어떤 형상으로 나타날지 알 수 없고, 종이의 타고난 결과 아름다움을 지워버리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그리는 것을 멈출 수 없으니 다만 마음을 조용하게 담아 그릇을 들여다보았다. 나의 불안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다툼에서 온 것은 아닌지, 최근 힘든 일을 겪고있는 친구에게서 온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묻고 직면하면서 종이 앞의 자신과 사건들을 분리했다. 그렇게 가벼워진 마음을 일만번의 획으로 올리고 종이의 결을 찬찬히 읽으며 표면을 깎았다. 


어쩌면 보통의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명상의 결과는 고작 날씬한 마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엉키지 않은 마음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보다 명쾌하고 생각보다 친절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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