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서의 사유
기획전 / 2021. 12. 17 – 2022. 3. 13 / 예술공간 이아
걷는 풍경은 6개월간의 작업 기간 동안 1달(720시간)을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작업을 공개했으며
‘삶-으로서의-사유’ 전시 기간 동안 1-6계(가로 풍경)의 풍경을. 15일(보름)에 한번씩 풍경을 교체했습니다.
윤회의 세상을 표현한 작품으로 열반에 드는 7계(7번째 세상)은 세로 풍경으로 변화됩니다.
평 론 / 백 곤(미학)
마음으로 향하는 조기섭의 ⌜걷는풍경⌟
티아마트의 물
우리는 마음이 답답할 때 바다나 산을 찾는다. 대자연의 경이로움과 숭고한 풍경에 갑갑하던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우 리는 또한 새로운 시작을 하거나 결정을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자연 을 찾는다. 아니 찾는다는 표현보다는 자연으로 들어간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자연으로 들어가는 것을 흔히 치유(治癒)라고 말하지 만, 이 치유의 개념이 상처받은 나를 낫게 하는 것보다는 내 마음을 정화하고 나를 돌아보게 하며 또한 새로운 결심을 하게 한다.
히브리어에 테홈(Tehom)이라는 말이 있다. 바로 ‘깊은 물’ 을 뜻하는데, 이는 메소포타미아의 창조 신화에서 나온 ‘티아마트 (Tiamat)’에서 유래했다. 티아마트는 ‘다른 것들을 제 안에 묻거나 에워싸는 덩어리’를 뜻하는데, 태초의 세계는 이 물 같은 성질의 티 아마트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티아마트는 원초적인 대양 의 힘이자 창조의 물인 어머니의 자궁을 의미한다. 넓고 넓은 푸른 바다에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유는 우리가 탄생했던 태초의 장소 로 되돌아가 나의 존재가치에 대해 사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가 조기섭의 그림에서 나는 이 티아마트의 세계관을 읽 는다. 또한 동양사상의 깊은 정서와 종교적 차원을 넘어서는 자기 수양을 통해 인간 영혼에 다가가고자 하는 그의 예술혼을 또한 엿 볼 수 있었다. 그의 그림은 풍경의 재현이자 정신적 차원이 응집된 추상화이기도 하다. 누구나 그의 작품을 바라보며 편안하게 감상 할 수도, 또한 자연의 원형에 관한 의미도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그림이 넓디넓은 바다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게 한다는 점이다. 조기섭의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자.
얕고 평평한 바다 풍경
조기섭의 그림은 드넓은 바다에 떠 있는 섬들을 조감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흰 배경의 화면 위에 얼룩처럼 보이는 검은 섬, 혹은 돌은 여기저기 불특정하게 위치하지만 조화롭게 화면 전체를 구성한다. 자연을 재현한 그의 그림은 한 폭의 풍경화이다. 검은 현무암 돌이나 섬의 원형을 제외한 배경색을 파란색으로 칠했다면 영락없는 바다 풍경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바다는 하얗다. 우리가 바다가 파랗다고 표현하지만 얕은 바다의 따뜻한 푸르름과 깊디 깊은 심해의 짙은 푸름이 다 다르듯이 조기섭의 하얀 바다는 파란색과 보라색, 회색과 금색, 진주의 영롱한 은빛 펄 색 등 수많은 색을 품고 있다. 그의 바다는 하얗다. 그는 하얗게 바다를 비워냈 다. 그리하여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
바다를 비워낸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 그는 수많은 물결 의 흐름과 돌을 둘러싼 물결의 퍼짐을 장지에 끊임없이 표현하고 또한 지우고 갈아내고 다시 그렸다. 종이의 마지막 빈부분까지 모든 곳을 바다로 채우기 위해 그는 세필로 물결 하나하나를 다 표현 하였다. 그리고 은분으로 전체적인 바다의 색을 맞추었다. 그의 붓 질은 잔잔한 바다의 물결 하나하나를 어루만지듯 자연 그대로의 모 습을 최대한 표현하였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자신의 신체적 팔에 내재시켰다. 그러한 노력 끝에 그는 마침내 바다를 비워내고 바다를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그러나 관객들은 그의 바다를 자연의 바다라 고 인식한다. 그의 그림이 한편의 풍경화이면서도 또한 추상화로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철저하게 바다를 그려냈고 또한 바 다를지웠다.그지운바다의영역엔관객인우리자신의생각이자 리한다. 아이러니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푸른 바다라고 인식했는데 바다가 보이지 않을 때, 자연의 풍경을 보고 있는데내마음을보는나를발견할때,꽉채워져있다고생각했는 데 비어있는 그림을 볼 때처럼 말이다.
비워진 바다, 빛으로 채워진 자연
‘정도(定道)를 읊다’ 그가 이번 전시에서 사용한 말이다. ‘놓인 것들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고, 사이 공간, 호흡하는 들숨을 느 껴야 비로소 날숨의 공간이 보인다.’ 자연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여 실히 드러난다. 그는 전시장에서 관객들에게 맨발로 걷게 하고 싶다고 했다. 관객들이정말 맨발로 걸을 것인지는 알수 없지만, 맨발로 걷는다는 행위가 주는 진정성은 그가 자연을 바라보고, 또한 예술에 대해 접근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이 어떠한지 가늠할 수 있는 말이다. 자연을 풍경으로만 보지 않고, 바라보는 나의 호흡과 정신에 집중해 야만 비로소 자연이 보인다. 그러하기에 그의 작품은 자연을 재현한 풍경화이면서 감상자의 내면 깊숙이 존재하는 자연의 원형을 향한 내면화이다. 원형은 자연을 비워낼 때 비로소 채워진다. 그는 수많 은 붓질로 바다를 비우고, 자연에 대한 마음을 비워냈다.
조기섭의 바다엔 색이 사라졌지만, 가장 강력하게 그곳이 바다임을 증명하는 것이 있다. 바로 빛이다. 빛의 흐름에 따라 반짝 이는 잔물결, 바로 윤슬이 존재한다. 그는 이를 표현하기 위해 은빛 펄을 사용하였다. 윤슬로 이루어진 광활한 바다에 던져진 검은색의 돌과 바위, 혹은 섬은 색의 대비를 통해 화면에 수많은 자국을 남긴다. 관객인 우리는그의 자국 하나하나를 따라가며 그가 말하는 풍경의 원형에 다가가게 된다.
조기섭의 이번 전시 「걷는 풍경」은 말 그대로 걸어가면 서 보게 하는 풍경이다. 80호 캔버스(100cm×150cm) 18개가 하나의 작품인 거대한 풍경은 높이 2미터, 길이 13.5미터로 벽면 하나를 가득 채운다. 전시장을 걸어가면서 그의 비워진 바다와 섬들을 바라 볼 수 있다. 그리고 바닥에 거울을 설치하여 벽면의 풍경이 더 확장될 수 있도록 하였다. 마치 그 풍경 속으로 들어와 있는 듯한 장소 경험을 위해 작가는 정밀하게 계산하여 공간을 재구성하였다. 빛에 의해 반짝이는 수면의 윤슬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바닥에 조명을 설치하여 거울을 통해 다시 벽면에 작품이 반사되게 하였다. 그리고 그 너머에 좌선을 위한 방석을 두어서 관객들이 편안하게 앉아서 작품을 감상하게 하였다. 또한 보름에 한번씩 새로운 풍경을 위해 전체 그림의 배열을 달리한다. 캔버스 18개가 새로운 배열로 바뀌더라도 섬들이 하나로 이어지고 물결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게끔 기획한 그의 치밀함이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영혼으로 돌아가는 돌
조기섭의 그림은 관객들에게 화면에 가까이 다가가 물결의 흐름과 크고 작은 검은돌의 조형미와 구성을 살펴보고 빛에 의해 반짝이는 다양한 색을 찾아보게 만든다. 떠다니는 검은 돌들 사이 사이에 흰색의 돌이 그려져 있다. 검은색 돌과 은빛 바다의 대비에 묻혀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쉬이 찾아내기 어려운 흰색의 돌은 그가 말한 대로 들숨과 날숨의 조화를 상징한다.
서두에서 조기섭의 작품이 깊은 물로 자신을 에워싸는 창조의 덩어리인 티아마트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고 하였다. 명상이나 자기 수양을 통해, 맨발로 걷거나 정좌하여 은색 풀빛이 감도는 대 자연의 바다를 바라보며 자기 내면에 있는 돌의 원형에 다가가게 하는 그의 작품은 동양적 사상이나 불교의 정신이 내재되어 있다. 실제로 그는 전시기간에 여섯번 풍경의 배열을 달리하는데 이를 ‘육도윤회(六道輪廻)’의 세상이라 칭하였다. 작품을 감상하며 자신을 되돌아보고 삶의 진리를 찾는성찰의 시간이 바로 조기섭이 추구하는 예술혼인 것이다. 그는 이미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것일까? 화면 속 그의 돌 하나하나가 각각의 부처가 되어 각자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그의 작품은 태초에 태어났던 어머니의 자궁 속 순수의 장소로 되돌아가 자연을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 가만히 사유하게 한다.
빛이 산란하고 물결이 넘실대고, 영혼의 검은 돌들이 떠다니는 은빛바다에서 관객인 나의 마음은 돌과 돌 사이의 거리만큼 넓어지고, 또한 가까워진다. 가까이 다가가 바라본 돌들이 멀리 떨어져 바라볼 때 하나의 섬이 되는 것처럼 그의 풍경은 개별적 시선에서 전체적인 조망으로 이어진다. 큰 바위가 풍화작용을 거쳐 작은 돌이 되고, 또한 모래가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듯이 그는 작품을 통해 우리 자신 안에 존재하고 있는 자연의 원형을 찾으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자연을 비워낸 그의 가득찬 풍경이 자태초의 장소로 되돌아가는 마음의 바다이다.
전 시 서 문 / 정 슬 기 (예술공간 이아 큐레이터)
걷는풍경
자연으로 들어가 걷고, 시간을 보냄으로서 사람들은 ‘비로소 치유 받았다.’ 고 말한다. 작가는 자연을 감상하기 위함이 아닌,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자연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의 이런 행위에 주목했다. 껍데기에 불과한 자신을 초월하여 자연으로 걸어 들어가, 서있는 그 자리에서 3자가 되어 내 자신을 바라보길 권한다. 삶에서 파생되는 고통과 번민은 실체가 없는 감정의 산물이다. 얽매임에서 벗어나 이상향과도 같은 본연의 편안한 상태에 이르러 본질에 대하여 사유하길 작가는 제안한다. 그림 앞에서 있을 때 마치 자연 속에 있는 듯 한 시공간을 만들기 위해 14미터에 달하는 대작을 선보인다. 18개로 분할된 화폭은 같은 시간 속,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순간을 제공한다.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화폭 위치는 6차례 변화한다. 화폭을 바뀌는 행위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을 의미하며 동시에 불교에서 윤회를 의미한다. 세필로 그리고, 갈아내며 완성한 작품은 한 붓, 한 붓에 작가의 마음이 묻어있다. 작가는 작업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데, 그 시간들을 작품에 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