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시


기획전 / 2023. 7. 11 – 8. 27 / 소암기념관

전 시 기 획 / 고 준 휘 (학예연구사)


시.시.시


한국화를 전공한 조기섭 작가의 작품은 얼핏 지나치듯 보면 하얗거나 은빛으로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작품은 관람자에게 시간을 들이고, 공간을 바꿔가며 감상하기를 요구합니다. 첫 번째 이유는 호분과 은분이라는 재료적 특성에 기인합니다. 작가가 ‘백색도(無形象–Whiteness)’라고 표현한 개념은 관찰자의 시점視點에 따라 만변萬變하는 색채와 형상을 드러내고 숨깁니다. 두 번째 이유는 작가의 작업이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쌓음과 깍아냄이 무수히 반복되는 그 과정은 작품 안에 농밀하게 함축되고, 빛을 통해 시각으로 인식되는 순간 은밀하지만 신비로운 풍경들을 펼쳐냅니다. 은백색의 무한한 화폭 속에서 명멸明滅하는 이미지들은 마치 시간이라는 수레바퀴에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생명체와도 같습니다. 우리는 그 무수한 윤회輪回의 목격에 기꺼이 시간과 공간을 할애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글 / 조 기 섭


몽상하는 바다


태풍이 지나고, 따뜻하고 온건한 바람이 하늘에 떠 있다.


약함에 숨겨져 있는 힘은 고요함을 응시한다.

순수의 이면에 담겨 있는 색-빛은 웅장함 속에 흐른다.

경계에 멈춰 있는 순간, 모진 비바람은 나를 서있는 것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몸에 힘을 빼내어 비운다.


허우적거렸다면 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태풍의 본래 의미는 정화, 

태풍을 대하는 감정은 두려움. 

바람에 날리는 구름을 보는 안도에 나는 바람을 비워낸다. 


“나를 비워내고 다시 돌아온 시간은 얼마나 온건한가.”


태풍이 올 때 다른 선택지는 없다. 

물속에서 조용히 바라본다. 


태풍 속에서 유일하게, 

깊은 바다는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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