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TWORKS
몽상하는 바다
장지에 은분 270×400cm(4PCS)(거울 반영 300×400cm) 2023
쌓음과 깍아냄이 무수히 반복되는 작업 과정은 작품 안에 농밀하게 함축되고, 빛을 통해 시각으로 인식되는 순간 은밀하지만 신비로운 풍경들을 펼쳐낸다. 은백색의 무한한 화폭 속에서 명멸(明滅)하는 이미지들은 마치 시간이라는 수레바퀴에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생명체와도 같다. 거대한 자연 안에서 우리는 그 무수한 윤회(輪回)의 목격에 기꺼이 시간과 공간을 할애한다.
태풍이 지나고, 따뜻하고 온건한 바람이 하늘에 떠 있다. 약함에 숨겨져 있는 힘은 고요함을 응시한다. 순수의 이면에 담겨 있는 색-빛은 웅장함 속에 흐른다. 경계에 멈춰 있는 순간, 모진 비바람은 나를 서 있는 것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몸에 힘을 빼내어 비운다. 허우적거렸다면 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태풍의 본래 의미는 정화, 태풍을 대하는 감정은 두려움. 바람에 날리는 구름을 보는 안도에 나는 바람을 비워낸다. “나를 비워내고 다시 돌아온 시간은 얼마나 온건한가.” 태풍이 올 때 다른 선택지는 없다. 물속에서 조용히 바라본다. 태풍 속에서 유일하게, 깊은 바다는 고요하다.